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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 나는 아는 형님(중소기업의 회장님)의 전화를 한통화 받는다.

내가 다른일을  하느라 오랜기간 만나지못했는데 할 이야기가 있다는것이었다,

오랫동안 보지 못한터라 나는 형님을 만났고 제안을 받는다,

중국 절강성에 한국상품 백화점을 만드는데 나보고 중국사업에 참여하라는 것이었다,

오랜동안 개인사업을 접고 단주를 하고 취미인 사진만 찍고있던터라 중국을 왕래하며 

시간을 좀보내는것도 그리 나쁘지않다고 생각하고 나는 중국사업에 동참하기로 했다,

급하게 결정된일이라 긴급으로 중국비자를 확보하고 4월쯤 중국에 가려는 순간 회장님은 

중국에 가기전에 라오스 법인설립중이니 관광겸 한번 다녀오라 제안을했고 나는 2016년 4월에 라오스에 처음 발을 딛었다.

라오스에 도착해 다음날 첫아침 나는 라오스 풍경을 보고 아.. 이런 나라가 있네, 정말 말로 표현할수없는 무언가 가슴에 왔다,

그리고 나는 회장님께 중국사업보다 라오스 사업을 맞아 보겠다 제안을 하고 라오스로 오게되었다,

라오스현지법인 설립을 마치고, 라오스 한국상품전시회 등을 참여하면서 나는 라오스에서 새로운 먹거리를 찿아 나섰다,

당시 나는 회사에 1년의 시간을 요구했다,

1년만 지원을 해주면 라오스에서 돌파구를 찿아내겠다고,,,

그러나 라오스 법인설립을 해주고 나서 몇개월 되지않아 나를 라오스에파견한 한국회사는 중국과의 문제등으로 인해 

어려움에 처하게 되고, 그들과의 계약은 흐지부지 무용지물이 되어버린다,

나는 처음부터 그들과 상관없이 라오스에 대한 신념이 있었기에 군 제대를 마친 큰아들을 라오스로 불러들여 

국립대에서 라오스어를 배우게하고 나는 내가 계획한데로 1년간의 준비를 진행했다,

 수십번 재작성되는 사업 계획서, 말도 통하지 않는 현지인들과 몸으로 부딪히며 라오스인이 되어야만 

라오스에서 살아남는다는 정신으로 이제 1년여를 보내온것이다,

이제 나에게는 1달이란 시간이 남았다,

4월전에 몇가지 사업을 확정해야한다.

며칠전부터 마지막 사업계획을 작성중이다.

이제 버릴사업과 4월부터 시작할 사업을 결정해야한다,

우연히 고등학교 친구를 만나서 그의 호텔오픈과 골프관련 사업을 도와주며 내가 생각한 라오스 사업을 

진행하려다 보니몸이 몇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나는 라오스에와서 몇가지 원칙을 정했다,

내가하는사업에는 자본투자가 최소여야한다.

한국인들은 라오스에서 사업을 하면 많은 돈을 벌수있다 생각하는지 몇억을 투자한다 많은말을한다.

투자도 어렵지만 이곳 라오스에서 몇억을 벌어서 회수한다는것은 정말 꿈같은 이야기이다,

대학생 아르바이트 시급이 800원나라에서 몇억원의 수익을 낸다는것은 제조업을 통해 해외로 수출을 하지않는한 힘든이야기다,

수도 비엔티안이라 해바야 인구 70만명의 작은 소도시다. 여기서 대박사업이란 없다,

그리고 내사업의 상대는 라오스인과 이곳의 주류 세력인 중국인을 상대로 해야한다는것이다.

라오스의 한국인 대부분은 한국사람을 상대로 장사를 한다,

맞다,,,단 몇일내에 1000달러를 소비하고 갈수있는 사람은 이곳 라오스인은 없기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시장이 제한적이고 큰그림을 그릴수 없다.

이외 몇가지 원칙을 세워놓고 사업을 준비하다보니 정말 중장기 사업 계획을 가져야한다,

이제 준비는 끝났다,

이제 시작이다.

한달간의 막바지 점검을 통해 나의 꿈을 시련할 작은 공간을 마련하고 

라오스에서 살아남기에 나는 도전할것이다, 

며칠 후면 한국에 다녀와야한다,

2016년 사진 전시회를 마쳤으니 2017년 1년간 작업할 준비를 해야하기때문이다,

올해 미술관에서 던져준 주제는 "서울의 지하, 익명성" 이다

참어렵다.

나는 풍경 사진보다 꼭 사람을 담아 사진을 찍는다,

생각대로라면 서울 지하의 노래방, 단란주점, 룸싸롱, 이런곳을 찍을 계획이다,

라오스에서 살아남기보다 더 힘든일 일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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